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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시스]

좀 거창하게 말해 보겠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요. 직선 코스로 갈까요. 아니면 흔히 말하는 나선형으로 진행하는 것일까요. 요즘 한국과 미국,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미국과 북한은 부쩍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곧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 전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문제도 풀릴 듯합니다. 물론 북한은 미국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핵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26일쯤 핵 신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이때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도 함께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철천지원수이고 악의 축이었던 북한과 미국이 이제는 보란 듯 어깨동무를 하고 포옹을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곧 북한에선 영변핵시설을 파괴하는 ‘세기의 쇼’를 세계에 곧 보여주려고 한다지 않습니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정부는 북한 핵시설을 공습할 듯한 태세를 갖추며 벼랑끝으로 몰아붙이더니 이제는 반대로 북한이 스스로 CNN 등 세계 언론들을 초청해 폭파하는 장면을 선보이겠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래쪽은 분위기가 매우 무겁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G-8회담 참석차 예정했던 한국방문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촛불 열기가 뜨거워 ‘에어포스 원’이 착륙하지 못할 정도인가 봅니다. 25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아주 직접적으로 쇠고기 수입문제가 부시의 발목을 잡았다고 썼더군요. 초강대국 대통령이 혈맹관계인 한국에 못 온다니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 못 온다고 포기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8월 베이징 올림픽 때나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그때도 자못 흥미로운 일, 아니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지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올림픽 참석 차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자세를 취한다는 주장입니다. 아직 회동 성사여부는 알 수 없으나 외신들은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통미봉남인지 얼마 전까지 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금은 스스럼없이 일어나는 국제환경입니다. 물론 쇠고기 하나만의 문제로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 테지만 말입니다. 역사의 도도한 진행을 보고 있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북미관계가 으르렁거리는 관계로 돌변하고 한미 통상관계가 눈녹듯 풀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미관계나 북미관계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의 가변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시의 방한이 이유야 어떻든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김정일을 베이징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정세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핵시설을 폭파하는 것도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으며 쇠고기로 인해 부시가 한국방문을 취소한 것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제의 한미, 북미관계가 오늘과 내일의 한미, 북미 관계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단순치 않은 문제를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Posted by 정진탄